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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come
등산 이야기

계룡산 관음봉 최단거리 코스, 겨울 산행 이야기

by []).push 2023. 12. 9.

 

계룡산 관음봉의 최단거리 코스를 올랐습니다. 등산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도 가볍게 다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첫 겨울 산행의 소견도 밝힙니다. 오르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를 한없이 생각하며 오른 산행이었습니다. 결국 나의 두 다리에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09:10_동학사 주차장에서 출발

 

처음 해보는 겨울 산행, 12월의 추위가 느껴지는 날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분 좋은 날씨도 아니었다. 서울 경기권에서는 몇 시간을 달려야 하겠지만, 나는 불과 40분 만에 동학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힛 소확행") 종일 주차비 4,000원을 지불하고 상점가를 지나 맨 처음 만난 이정표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천정 탐방 지원센터 쪽으로 긴 코스를 선택할 것인지, 그냥 관음봉 정도를 오를 것인지 마땅히 판단이 서질 않았다. 결국 관음봉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상보다는 현실의 몸 상태를 적극 반영한 결정이었다. 관음봉 4.1km를 향해 첫걸음을 옮겼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별 어려움 없이 걸어왔다. 동학사 가기 전 일주문과 길상암을 만났다. 일주문과 대웅전까지의 거리를 보면 그 사찰의 규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너무 말끔히 정리된 아스팔트 길이 사찰의 고색창연( 古色蒼然)을 반감시키는 것 같았다. 끝물의 단풍이 힘겹게 가지를 붙잡고 있지만 겨울 색이 완연한 초목 길을 계속 걸어간다.

 

 

 

 

 

 

 

 

동학사를 코앞에 두고 다시 만난 이정표, 갑사 쪽으로 넘어가거나 남매탑을 오르는 등산객은 이 길을 택한다. 물론 산은 하나로 이어졌기에 삼불봉을 거쳐 관음봉까지 산행도 가능하다. 나 또한 원래 계획대로라면 관음봉에서 삼불봉을 거쳐 이 길로 하산할 것이다.

 

연애시절 아내와 달랑 물 한 병 들고 남매탑을 올랐었다. 바로 이 길이다. 손 한 번 잡지 않은 어색한 사이에 무슨 생각으로 이 험한 길을 두 청춘이 올랐을까? 20년도 훨씬 지난 기억이 잠시 발걸음을 붙잡았다. 꽃 같은 아내와 걸었던 저 길 위에서 우린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 ? 잠깐의 사색을 뒤로하고 다시 관음봉을 향한다.

 

 

 

 

 

 

10:00 _ 동학사 도착

 

주차장에서 식당가를 거쳐 아스팔트 곧게 뻗은 길을 어려움 없이 걸어왔다. 주차장에서 관음봉까지 4.1km인데 이미 동학사까지 1.7km를 너무 쉽게 줄인 느낌이었다. 그래봐야 2.4km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관음봉 정도는 거저 먹는 건가 싶은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 동학사를 둘러볼까 하다 일단은 관음봉만 생각하기로 했다.

 

 

 

 

 

 

동학사를 지나자 은선폭포 800m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부턴 리얼 흙바닥이다. 음 ~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에너지바 하나를 까먹었다. 먹으면서도 "지금 먹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별로 한 게 없는 시점이었고 체력 또한 충분한 상황이었다. 말로만 듣던 은선폭포에 기대감을 안고 걸음을 옮겼다.

 

 

 

 

 

 

 

은선폭포를 향하는 첫 번째 관문 585계단을 만나게 된다. 올라가는 중간중간 숫자 표시를 해두었는데 걸음을 옮기며 줄어드는 숫자를 보는 재미가 소소하다.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센스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첫 번째 계단의 "satu" 는 무슨 의미일까? 아직은 등산 초반이라 발걸음이 가볍다.

 

 

 

 

 

 

제법 종아리가 뻑뻑해 올 때 즈음 585계단이 끝났다. 한숨을 돌리며 바라본 풍경에 가슴이 시원하다. 겨울 산행임에도 등골에 땀이 흐르고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능선이 바람을 막아주어서 추위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우중충했던 날씨도 제법 환해지고 있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녹색 기운이 겨울산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것 같다.

 

 

 

 

 

 

한숨을 돌리고 다시 은선폭포를 향하던 중 "이게 길인가" 싶은 길을 만났다. 난간이 없다면 정말 위험한 길이다. 등산객들을 배려해 만들어놓은 난간을 보자니 이걸 만든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들의 노고가 충분히 느껴졌다. 이제 겨우 585계단을 통과했는데 다시 만난 발목 스트레스 구간 같은 느낌이었다.

 

 

 

 

 

 

 

 

10:50_은선폭포 전망대 도착

 

힘들지 않게 은선폭포 전망대에 도착했다. 여장을 풀고 잠시 숨을 고른다. 기대했던 폭포의 모습은 아니지만 제법 낙수의 움직임은 보인다. 얼어붙지 않은 게 어디야 싶다. 주차장에서 대략 1시간 40분 정도가 걸렸다. 나처럼 딴짓 안 하고 오롯이 산행만 한다면 1시간 남짓한 거리다.

 

 

 

 

 

 

은선폭포 전망대를 지나 관음봉으로 향하던 중 만난 베이스캠프 같은 장소이다. 제법 넓은 평지이며 석축이 무너지지 않게 시멘트 작업이 되어있다. 벤치도 여러 개 있어 간단하게 음식을 섭취하기도 좋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정표에는 관음봉 1km라고 되어있었다.

 

"앞으로 힘들 거야 여기서 충분히 쉬었다 출발해" 같은 느낌의 공간이었다.

 

 

 

 

계룡산 관음봉 해발 766m

12:05_관음봉 도착

 

갑자기 관음봉 .... ?

베이스캠프에서 관음봉까지 1km를 오르며 사진 한 장을 남기지 못했다. 스틱의 스트랩을 풀고 장갑을 벗고 휴대폰을 꺼내고 카메라 앱을 실행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정말 별거 아니지만최소한 그때만큼은 너무 귀찮고 힘든 작업이었다. 사진보단 생존이었다.

 

585계단처럼 324개의 계단을 또 만났고, 표표히 걸을 수 있는 흙길이 한 군데도 없었다. 바위와 돌밭으로 이루어진 길인데 사람들은 "돌너덜길" "깔딱 고개" 라고 표현했다. 도무지 오르는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내려와야 하는데 .. !!

 

 

 

 

 

계룡산 관음봉

 

휴일이라 그런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다. 오를 때는 몰랐지만 막상 능선에 올라서니 황소바람이 불었다. 사방이 뚫려있어 마땅히 바람을 피할 곳이 없었다. 땀이 식으면서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의지와 상관없이 온몸이 덜덜 떨렸다. 얼른 경량 패딩을 꺼내 입었다.

 

관음봉 표지석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한동안 머뭇거려야 했다.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 선뜻 누구에게 사진을 부탁하지 못하고 쭈뼛거렸다. 다행히 키 크고 멋진 중년의 아저씨가 다양한 각도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고맙습니다 ..^^

 

 

 

 

계룡산 연천봉, 문필봉

 

연천봉과 문필봉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손에 잡힐 듯 보일뿐이지 막상 가면 지옥을 맛볼 거 같았다.

 

 

 

 

 

 

 

계룡산 삼불봉

 

멀리 삼불봉도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원래 계획은 관음봉에서 점심을 먹고 삼불봉과 남매탑을 거쳐 동학사 쪽으로 하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올라왔던 길을 그대로 다시 내려가는 최단거리 코스로 노선을 변경했다. 

 

 

 

 

 

 

다시 1km를 내려와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남편의 첫 겨울 산행을 위해 휴일 아침잠을 반납하고 김밥을 준비해 준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뭉글해졌다. 뜨거운 국물의 목 넘김을 예상했었지만 라면은 익힌다기보다 불려 먹는 느낌이었다. 반쯤 먹다 남은 아메리카노를 30분 뒤에 다시 마셨을 때 그 미지근함 정도랄까  ...  암튼

 

훗날 이 온도에 대한 결핍은 폭풍 검색을 낳았고 드디어 발견한 아이템에 신세계를 보았다.결핍은 성장을 만든다는 말을 여기가 갖다 붙여도 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온도에 대한 결핍은 해결되었다.

 

관음봉 등반은 주차장에서 동학사를 거쳐 은선폭포를 지나 관음봉으로 가는 코스가 최단거리이며 별로 힘들 것 없어 보이는 초반 레이스와는 달리 갈수록 난이도가 더해지는 코스이다. 물론 개인의 체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기록경기가 아닌 이상 자연을 즐긴다면 누구나 편하게 오를 수 있다.

 

 

 

 

 

계룡산

 

점심을 든든히 챙겨 먹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말 그대로 산멍을 때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는 등산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만큼은 확실히 했었다. 내려오는 길에 해가 쨍하다. 날씨가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경량 패딩을 준비해 가지 않았으면 정상에서 만난 황소바람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발목이 긴 등산화를 신지 않았다면 아마 발목이 남아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얼까 .. ?  한없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데 끝없이 터지는 도파민의 파티를 즐기기 위함일까? 머리는 모르지만 가슴은 알겠지

 

산멍을 때리며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또 다음 산행을 준비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아니면 잘하고있는 건지는 다음 산행이 말해주겠지 왜 나는 또 오르려 하는 걸까 .. ?

 

 

15:00_동학사 주차장 도착 ..... 2023_12_02_ 계룡산 관음봉 산행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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